노랑해전당시 일본군의 규모가 대략 500여척의 배가 참전하였고 그중에서 200척이 파괴되었고 150척이 파손되었고 100척 포획당해서 파괴되거나 파손당하거나 포획당한 배를 전부다 합쳐서 피해가 450척이나 되기 때문에 최소한 일본군의 피해가 4만명에서 5만명이상이고 위키백과에서도 일본군의 피해가 사상자 7만명이라고 적혀져있기 때문에 대략 최소한 5만명 이상의 일본군이 노량해전에서 죽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저는 노량해전당시 전사한 일본군이 대략 1만명 남짓한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울산성전투당시 가토 기요마사군이 옥쇄할 위기에 처하자 기요마사를 구하기 위해서 사실상 모든 일본군이 울산성 전투에 지원병으로 참전합니다. 그때 당시 기요마사를 구하기위해 참전한 일본군의 규모가 대략 7만명이고 울산성에서 싸우고 있는 가토 기요마사의 15000명정도의 병력까지 합치면 총 85000명입니다. 그리고 울산성전투당시 일본군이 승리하였지만 대략 일본군도 1만명정도 전사하였기 때문에 울산성전투이후 일본군의 규모는 75000명정도 됩니다. 울산성전투이후에 일본군의 규모가 14만명에서 75000명으로 대략 절반가까이 줄어든 것이지요. 따라서 위키백과에 나오는 일본군 사상자가 7만명은 사실상 노량해전때 모든 일본군이 참전하여지만 나오는 수치입니다. 현실적으로 절대로 불가능하지요.그리고 그때당시 일본군의 배는 거의 대부분이 세키부네와 고바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아다케부네는 실제로 직접 전투에 참전하지 않고 대장이 타서 지희하는 대장선이기 때문에 실제로 임진왜란당시 조선수군과 싸운 일본수군의 주요함대는 거의 대부분이 세키부네와 고바야지요. 하지만 고바야의 탈수있는 승원수는 대략 30명정도이고 세키부네의 탈수있는 승원수는 대략 고바야의 2배가 조금넘는 70명정도입니다. 참고로 조선수군의 판옥선의 승원수는 대략 130명 정도입니다. 그리고 노량해전당시 참전하였던 다이묘는 시마즈 요시히로,다치바나 무네시게,데라자와 마사시게,다카하시 무네마스 이 4명입니다. 시마즈 요시히로는 사천전투당시 요시히로가 이끄는 군사가 1만명 정도이니 노랑해전당시 시마즈 요시히로는 대략 1만명 정도 참전하였고 또한 다치바나 무네시게는 임진왜란 정유재란당시 3000명정도를 이끌고 참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카하시와 데라자와는 둘다 석고가 2만석도 채안되는 소다이묘이기 때문에 노량해전당시 대규모의 병력을 동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때문에 노량해전당시 참전하였던 일본군의 숫자는 대략 2만이 채안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임진왜란당시 고니시 유키나가가 18000명정도의 병력을 700척의 함선에 태워서 조선에 쳐들어왔기 때문에 노량해전당시 일본군의 규모가 500척이라고 해도 실제 병력은 2만명이 채안되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량해전당시 일본군의 전사자수는 기껏해야 2만명이 채안되었는 1만명 남짓정도의 병력이 전사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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