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적으로 우리가 알고있는 명량해전의 조선군과 왜군 수치이며 영화 명량에서는 333척으로 설정했지만 133척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난중일기에는 133척으로 기록되였으나 이는 이순신 전투 중 바라본 왜군 숫자이고 뭣보다 선조에게 찍힌 상황이라 축소해서 공을 올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333척 기록은 이순신의 조카 이분이 목격자의 증언을 토대로 쓴것인데 사실 이 기록또한 실제로 보면 이렇다. '그날 피난한 사람들이 높은 산봉우리 위에 올라가 바라보니 적선이 쳐들어오는데 300까지는 헤아렸으나 그 나머지는 얼마인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즉, 최소 300척이라는 얘기고 그보다 훨씬 많을수도 있다는 소리이다. 이충무공전서를 보면 명량해전 당시 적군 수는 500여척으로 기록되어있다. 믿기지 않지만 이또한 목격자 증언을 토대로 한것이다. 때문에 이순신이 대면한, 전투에 참여한 왜군만 133척이고 후차를 대기하는 전투선과 보급선 등을 포함하면 최대 500여척일것이라는게 거의 정설이다. 물론 100% 확실하지만은 않다. 이에 대한 설이 워낙 많다. 무엇보다도 아군 13척이 싸웠다는것도 반은 틀리다. 명량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순신을 제외한 12척은 쫄아서 전부 뒤로 물러나 있었다. 이는 엄연히 사실이며 전투 중반까지 싸운것은 이순신의 함선 1척 뿐이다. 나머지 12척은 전세가 역전되는것을 보고 먼저 싸우러 간 안위 장군 눈치보며 뒤따라갔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이순신이 전세를 뒤집기 전까지 분위기는 1대500이었다. 명량이라는 영화처럼 백병전이 있었고 사상자가 많은 치열한 전투였을까 영화건 드라마건 명량해전 나올때마다 나오는 장면이 백병전이다. 백병전에서 미친듯이 싸우고 죽어나가다가 승리하는 장면으로 나온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백병전은 있지도 않았고 기록에도 없다. 백번 양보해서 있었다 쳐봐도 백병전이 있었다면 영화처럼 미친듯이 죽어나가야 했을텐데 이순신의 정유일기에는 아군 측 사상자가 단 2명, 부상자 3명으로 그마저도 전부 총알에 맞았다고 되어있다. 백병전은 있을수가 없다. 그나저나 전과가 경이롭다.(참고로 왜군은 31척 침몰) 이순신은 조류의 불리함 앞에서 전투 중반까지 최대 1대500으로 싸워 전세를 뒤집어 놓았다. 전투 결과 아군 사상자는 단 2명인데 반해 왜군은 31척이 궤멸되었다. 대체 이순신이 어떻게 전투 중반까지 홀로 전세를 역전시킨건지는 아직까지도 학계의 미스터리라고 한다. 그러니깐 통제사는 조선수군의 병력을 두패로 나누어서 한패는 임하도의 좁은목을 지키게하고 다른패는 임하도를 우회하여 왜군을 공격하여 묶어둔 다음에 썰물시간대에 혼란을 틈타 화공으로 왜군을 섬멸했다. 명량해전에 파괴된 왜선수는 통제사가 이끄는 공격대가 30척이었다. 임하도의 좁은 목 앞 해역에서 최소 100여척이상 화공으로 격침되었다. 조선 수군의 전체 피해규모는 불명입니다. 그러나 최소 100명이상의 피해가 있을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명량해전에 참가한 일본군 병력은 300척이 넘는다. 피란민은 제 3자이기에 객관성을 지니고 있다. 마다시 병력이 130척에 산도인 도도다카토라의 병력이 120척이므로 이둘을 합치면 250척이고 다른 장수까지 합치면 300척은 거뜬히 넘어간다. 그러나 정확한 수치는 확인 불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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