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를 이끌고 자주적인 지위를 획득하기 위하여 19세기 후반부터 그려진 민족사를 이해하고 우리나라 민족이 노력한 부분들에 대해 이해하고자 한다. 조선시대의 말기에는 평등사회를 위한 신분 질서가 해체되었다. 또한 실학과 한글 소설 보급 등으로 서민계층의 수준이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목차
1. 당시 세계의 흐름
2. 내부 통치를 위한 체계 정비 및 부작용
3. 통상 거부 정책과 그 결과
당시 세계의 흐름
19세기 후반 세계의 흐름은 제국주의가 도래하였는데 이는 민족주의가 높아지고 자본주의가 발전한 결과이다. 중국에서는 반제국주의 운동이 고조되고 근대화 운동이 함께 진행되고 있었다. 또한 일본도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 운동이 적극적으로 추진되는 상황이었다. 서양의 근대화 선점으로 제국주의를 동반한 침략으로 식민지화를 추진하고 있었다.
내부 통치를 위한 체계 정비 및 부작용
이러한 상황속에서 우리나라는 흥선대원군이 사실상 집권하여 삼정 문란 시정을 통한 민생안정 및 왕권의 강화를 위한 개혁이 추진되고 있었다. 그에 따라 기존 기득권 세력인 양반의 불만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안으로는 개혁을 추구하였으나 밖으로는 서양의 제국주의 세력과의 수교를 거부하고 천주교도인들을 박해하였다. 흥선대원군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에 따라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초래하기도 하였으며 이는 조선의 문호 개방의 지연을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통상 거부 정책과 그 결과
이러한 쇄국정책은 오래가지 못했는데 강제로 불평등 조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강화도조약이라는 불평등 조약을 통해 일본과의 외교가 체결되었으며, 그 후 미국과의 조미 수호 통상 조약,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과의 불평등 조약도 이루어졌다. 특히 일본의 강화도 조약에 따른 경제적 침략으로 일본과의 악연이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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