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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소현세자의 죽음

by 바이슨이 2020. 12. 5.

소현세자가 인조에게 청의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가 분노한 인조가 던진 벼루 맞고 앓다가 죽었다는데 그런식으로 따지면 살 사람이 있을까요? 제가 보기엔 인조가 소현세자를 독살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효종도 고름짜다가 출혈이 과해서 죽었다는데 이것도 역시 고의적인 암살이 아닌가 싶습니다. 벼루맞아 죽었다는 이야기도 연려실기술에만 나오는걸로 알고있고 독살당했다는 이야기도 그저 의심되는 사항일 뿐 정설은 아닌걸로 알고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이 데이터베이스화 되기전에는 연려실기술이 사실상 정사 취급을 받았기때문에 헷갈려하시는분들이 좀 계십니다 흐흐 저도 헷갈리는걸요 벼루설은 말 그대로 썰이고 독살설도 그나마 신빙성 있는 음모론 정도죠. 대체로 인조가 신뢰하던 돌팔이 침쟁이로 인한 의료사고일 정황이 높다... 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인조가 의료사고가 벌어진거를 알고도 돌팔이 침쟁이한테 솜방망이 처벌내린거는 사실아닌가요?(의료사고로 죽이라고는 안했겠지만요) 1. 벼루설이란 게 마술사왕 회원의 언급처럼 말 그대로 '썰'에 불과한데다 그 출처는 야사집 연려실기술입니다. 그리고 이 야사가 민간 사이에서 돌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 내용이 시사하는건 소현세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발호일 가능성이 큽니다. 전체적인 야사의 내용이 '봉림대군은 조선으로 귀환하면서 잡힌 포로들의 송환을 요구했는데 소현세자는 벼루와 붓을 요구했고 이 사실을 알고 분노한 인조가 벼루를 세자에게 던지니 그 자리에서 맞아 죽었다'라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2. 소현세자를 진단하고 처방했던 이형익은 관료들 사이에서도 돌팔이, 즉 사이비로 악명이 높은 어의였습니다. 효종 또한 그 악명을 알고 이형익에게 침맞는 것을 거부했을 정도였고, 이형익은 소현세자뿐만 아니라 인조까지 의료사고로 사망하게 한 전례가 있기 때문에 고의적 독살의 가능성은 한없이 낮습니다. 게다가 소현세자가 심양에 억류되면서 쓴 편지에 자신의 몸이 안 좋아졌다고 언급하고 있고, 실록 내에서도 귀환 후 학질에 시달렸다는 기사가 존재하는 것으로, 위를 포함한 모든 내용들을 종합하여 유추하면 원래부터 몸이 좋지 못했다가 치료를 받던 도중 의료사고로 사망했고, 인조는 그런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했을 뿐이라는 겁니다. 한의학전문의들도 실록의 해당 부분(소현세자 시체상태)을 읽고 의료사고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바있습니다. 그리고 모두 정황 증거일 뿐, 확실한게 없습니다. 그나마 독살설은 세자비가 갑자기 유배를 보내진다던가 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럴듯 하긴 했지만, 차후 효종의 승계 과정에 문제가 없게 하려면 소현세자의 직계는 완전히 제거해야만 했기 때문에 그것이 꼭 독살설을 증명한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효종의 종기 문제는 효종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근대 사회 전반의 문제였습니다. 간단한 외과 수술조차 하기에는 핵심적인 마취 기술 등의 복합적인 기술력이 많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종기 고름이 심하게 악화되어 죽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효종을 진단하여 침을 놓던 도중 의료사고를 일으켜 사망한 어의였던 신가귀가 능지형이 아니라 교수형으로 감형된 것을 감안하면 효종 고의 암살의 신뢰성도 다분히 낮다고 볼 수밖에요. 게다가 당시 신가귀는 기록 상 수전증을 앓고 있었다고 하니 더더욱 고의의 가능성이 없는 것 같습니다. 독살설이라는 것 자체가 썰이지만, 소현세자 사망 이후 종법질서를 무시한 왕통 계승, 강빈 옥사 등등 벌어진 일련의 사건에서 설득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사실일 거라 생각합니다. 선대였던 광해군 사례를 보면, 마음에 안드는 후계자는 참초제근해야 후환이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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