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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광해군의 인지도 상승 계기는?

by 바이슨이 2020. 11. 18.

기억이 맞다면 광해군에 대한 국민적 인지도가 올라가고, 그에 기인해 긍정적으로 재평가가 된 계기는 90년대 무슨 역사교사모임에서 우리역사에서 가장 재평가해보고 싶은 인물 1위로 광해군이 뽑혔는데 그걸 당시 조선일보가 크게 보도하면서 아마 이때부터 광해군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재평가가 이루어진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역사교사모임에서 재평가인물로 광해군을 1위로 뽑은것도 큰 이유인 것 같습니다. 광해군을 마냥 긍정적으로 보자는 것이 아니고 학생들이 거의 모르고, 단순히 군으로 불리니 무슨 연산군처럼 인식을 해서 다각적으로 보자 이런 내용으로 기억하는데요.. 이걸 조선일보가 마치 긍정적으로 재평가해야 되는 인물인것마냥 보도하기 시작하면서 아마 이때부터 광해군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광해군에 대한 재평가는 인조때부터 시작하여 조선시대 내내 약간씩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재평가는 일제시대부터 였습니다.. 일본인들이 광해군의 외교 역량에 후한 점수를 주기 시작했고, 그들의 영향을 받은 이병도가 해방이후에 본격적으로 광해군 연구에 매진하여 긍정평가를 내렸고 이병도 제자들 일부가 승계하여 지금까지 내려온 것라서 역사스폐셜 이전부터 광해군에 대한 대중들의 긍정적인 평가를 꽤나 오래전부터 뿌리 내렸습니다. 이미 95년 서궁 이라는 kbs드라마가 방송되었는데, 개시와 인목대비가 주인공이었지만, 사실상의 주인공은 광해군이었습니다. 큰 인기는 없었지만, 광해군의 외교부분에 초점을 맞추어서 대중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습니다. 더 오래 올라가면 mbc 조선왕조 오백년 에서 광해군 편(1986년)에서도 광해군의 중립외교에 어느 정도긍정적으로 평가를 내렸습니다. 역사스폐셜 이전부터 대중들은 광해군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가 최근에 광해군에 대해서 암군이라는 평가 가 나오면서 오히려 그게 더 충격적으로 보였습니다. 선조 도망다니고 책임 광해군한테 지운걸로 읽었습니다. 광해군이 잘했다기보다는 선조가 정신적으로 아들을 괴롭혔다고 들었습니다. 왕위이양한다면 계속 석고대죄 시키고 광해군이 과가 있으니 명분이 있어 끌려내려왔으나 인조는 정말 미친놈이던데 잘못알고 있었을까요. 광해군이 성군이 아닌건 맞지만 임란때 분조를 이끌어 훌륭히 수행한것 이것만 가지고도 조선조 탑10안에 들어갑니다. 여기에 중립외교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그만 선조10배 인조100배 그냥 인조는 조짜를 떼서 군으로불러도 되는 양아치 선조는 조선을 버리고 중국으로 도망가려해서 한심했죠. 광해군한테 힘을 팍팍실어줬으면 광해군이 결과가 좋았늘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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